그녀들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미국 동남부 인구 약 20만의 캠퍼스 타운이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내가 보는 미국 여성은 대학교 여학생이 대부분일 정도로 편향되어 있었다. 보기 좋게 햇볕에 그을린 예쁘고 어린 백인 여학생들. 좀 살아보니, 이 예쁜 아이들이 금요일 밤에는 잘 차려 입고 다운타운 클럽을 가거나 친구들과 파티를 즐긴다는 걸 알게 됐고, 일부는 부모 세대로부터 이어 온 여학생클럽 (sorority) 활동을 하며 일찍부터 사회관계를 쌓아간다는 걸 알게 됐다.
<사진은 뉴욕에서 찍은 사진으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는 관계가 없음을 밝힌다>
그렇지만 이런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도시에는 머리카락이 엉켜 있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의약용 마약에 의존한 덕에 이빨이 상한 백인 여성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도시 중심부를 벗어나면 소위 위험구역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정크 푸드 섭취율이 높고 일정한 수입이 없으며,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며 미성년자 자녀를 키우는 흑인 여성이 살고 있다. 생활반경이 학교와 기숙사로 정해져 있던 내가 전자말고 후자를 보는 일은 월마트나 크로거 같은 중저가 식품 마트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가정폭력 쉼터에서 인턴을 시작하며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렸다. 너무나 낯설어서 비현실적이었던, 그래서 오히려 편견이 뇌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태로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 레이더 밖의 삶. 다른 피부 색, 경험, 말투, 일상을 살아가는 LM, TO, CH 등의 이니셜로 기록되던 그녀들은 안전을 위해, 피난처가 없어 한 곳에 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빈곤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여성은 가난할까. 게을러서, 교육을 못 받아서, 이혼을 해서,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정말 그 이유가 전부인지 그 이유들로 그들의 가난에 철저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성 빈곤에 대처하는 미국의 입장은 좀 더 분명하다. 절대 빈곤, 상대 빈곤 수치에 걸려 넘어진 자들을 빈곤계층으로 정하고, 그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강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공황 때부터 사회보장법의 일환으로 자녀를 부양하는 빈곤 가정에 현금보조를 해 왔다. 이 법과 그 개정법이 재밌는 이유는 수혜자 대부분이 결혼하지 않았거나 가족 붕괴로 홀로 자녀를 부양하는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 결과 언젠가부터 미국인에게 빈곤 여성은 정부로부터 현금보조를 받는 여성으로 여겨지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여성들은 이렇다” 라고 하며 일정한 특징들로 이루어진 틀 (framing)안에 가둔다. 빈곤에 대처하는 미국 정부의 자세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줄곧 장기 수혜자로 전락하는 미국 빈곤여성의 삶을 보며 불안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여성 수혜자들로 치우친 현금보조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빈곤이라는 건 얼핏 보기에 빈곤한 자는 말 없이 받기만 하고, 주는 자 입장에서는 할 일도, 할 말도 많은 골치 아픈 과제인 듯 하다. 미국의 현금보조 프로그램의 역사를 보며 미국 정부가 어떻게 그 불안과 답답함에 대처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현금보조 (Temporary Assistance for Needy Families)
기존의 사회보장법 안에서 지급되던 현금보조는 1996년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클린턴 정부가 개인적 책임과 일할 기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방법 (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Act) 에 서명한 것이다. 따라서 빈곤 가정에 지급되던 현금보조는 “Temporary Assistance for Needy Families”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그 내용 또한 대폭 수정되었다. 그 수정안들은 두 가지 사항에 충실하고자 했다. 먼저, 생물학적 아버지의 양육권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혼외 임신과 출산을 줄이고, 양육권 설정을 통해 양육비를 지급받도록 하여 생계비에 개인의 부담을 늘이는 한편 정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두번째로, 특히 수혜 가족의 가장을 재활하여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었다. 빈곤 가정의 성인 수혜자들은 보통 빈곤 이외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약물 중독, 가정 폭력, 교육 수준과 직업 훈련 측면에서 질 낮은 인적 자원 등의 장벽을 깨지 않고는 현금보조는 말 그대로 구멍난 독에 물을 붓는 격일 것이다. 따라서 현금 보조 혜택 이외에 고용과 기타 문제를 평가해서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 또는 연계하는 케이스 관리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조지아 주 TANF 케이스 관리 양식>
이 모든 노력은 수혜자가 스스로 일하도록 하여 현금보조의 장기화와 자칫 복지혜택에 의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였다. 결과적으로 현금 보조는 수혜자들에게 1) 생물학적 아버지의 양육권 설정, 2) 그로인한 정기적인 양육 수당 수급, 3) 경제 활동 및 유사 경제 활동 참여를 의무화하였고, 현금보조의 수혜기간을 1인당 평생 60개월이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수혜 가능한 가족수를 제한 하는 등의 구체적인 사항들을 시행하게 되었다. 위의 사항들은 일명 현금보조 명칭의 약자인 TANF에 조건 (requirements)을 붙여 “TANF 수급조건”으로 불린다. 현금 보조 자격은 주마다 다르지만 물가를 고려하여 $269 (앨러배마) 에서 $1,641 (하와이) 이하의 소득을 가진 가정에 주어지며 지급액은 보통 연방 정부 빈곤선의 30%를 밑돌고 있다.
왜 계속 빈곤할까?
현금보조의 효과는 논쟁의 불씨를 가지고 있다. 수정안의 성과는 현금보조 수혜자의 감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시행 이후 일부 주에서는 약 40%에 달하는 수혜자가 감소되며 일부 수혜자들의 경제적 자립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일하기 시작했다. 수혜 기간 제한 없이 병원의 나일론 환자처럼 야금야금 보조금을 타먹던 그들이 드디어 자극을 받고 일터로 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빈곤과 이별한 것일까? 일부 연구들은 수혜자 감소는 TANF 수급조건을 따를 수 없는 수혜자와 잠재 수혜자가 현금보조 자격사항에서 이미 자격을 박탈 당했기 때문이며, 주마다 50%를 웃도는 경제 활동 참여율은 연방정부 기준을 맞추려는 허울 좋은 수치일 뿐 대부분의 여성 수혜자들이 저임금, 비정규직 일터로 내 몰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TANF 수급조건에서 말하는 수혜자의 의무와 책임은 정당한가? 무엇보다 그 의무와 책임은 수혜자 전체로 일반화될 수 있을까? 현금보조는 이에 대한 대책도 내 놓았다. 몇 가지 수급조건에 예외사항을 둔 것이다. 특히 경제활동에 지금 당장 참여할 능력이 없거나 양육권 설정 시 주소 노출 등의 이유로 안전상 문제가 있는 경우 수급조건 이행을 면제받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으로는 가정폭력 등 빈곤과 관련 있는 여러가지 중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수혜자가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예외사항은 정책에 명시되어 있는 만큼 일선에서 포괄적이고 일괄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과거 현금보조는 정책 틀 안의 수혜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현재의 미국 현금보조 정책은 프로그램 밖에 잠재적 수혜자를 키우고, 그들의 빈곤 문제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는 듯 하다.
오바마 대 롬니
클린턴 정부 때 개정된 현금보조는 당시 뿐만 아니라 밀레니엄 시대 초기만 해도 큰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이 후 예산 삭감과 잇따른 개정으로 인해 마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다른 정책 안에 편입 또는 입법 정지 될 지 모르는 지는 정책이다. 그에 따라 정책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물론 여성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체 법안이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 값 싼 정치 싸움에 이용 될 뿐이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Mitt Romney)는 때아닌 현금보조 수혜자들의 자격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흑인 여성에 대한 현금보조 의존성을 부각하고 가난한 유권자에게는 관심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오바마(Barack Obama)가 각 주가 유연하게 수급 기간 제한을 조정하도록 하는 공문을 보낸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롬니의 논리성이나 시기성을 논하기 이전에 그의 행보는 정치전략이다. 그리고 언어와 방법만 다르지, 많은 미국인들의 생각이다. 롬니 선거 캠페인은 사람들의 잠재적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내 세금이 쓸데 없는 곳에 쓰이는 건 참을 수 없다’, ‘의무 없이는 혜택도 없다’라는 생각에 불을 붙이려 했고, 만약 동의하는 유권자라면 ‘오바마가 내 세금을 쓸데 없는 곳에 쓴다’, ‘오바마가 의무도 안 지키는 사람들에게 내 돈을 쓰고 있다’ 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빈곤하고 현금보조라는 정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각과 감정은 복잡하다. 그들은 정말 다루기 힘든 까다로운 집단일지 모른다. 그래서 너무나 특별한 그녀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따라 더 많이 가진 자가 세금이든 기부를 통해 사회 약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법은 여전히 가치롭다. 그리고 그런 접근법은 분명 사회를 이롭게 한다. 반면 자원과 부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든 자연스럽게 빈곤계층으로 흐르지 않는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국가의 개입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소극적, 적극적으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금보조를 받는 여성들 중에는 일시적으로 경제활동 참여가 어렵거나 그것만으로 빈곤을 탈출하기 어려운 구성원이 있다. 이들을 전체로 확대하거나, 상황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같은 의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자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개별화에 초점을 둔 사회복지 서비스는 정부/비영리 단체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서비스 전달은 평가와 모니터링을 기본으로 하고, 그에 따른 보상과 개입이 필요하다.
<존 롤스의 정의론 영문본 표지>
20세기 말 “정의론”의 저자 존 롤즈 (John Rawls) 는 우리가 왜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하는지 정의의 원칙과 가정을 통해 설명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어야 하며 그런 소득 분배에 대한 직책은 누구에게나 약자에게 가장 이로운 혜택을 가져온다면 경제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이는 우리 모두가 그 약자로 태어나거나 그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 약자가 아닐 뿐더러 그 약자가 될 가능성이 적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왜 그들을 위해 내 세금이 쓰이고 편의를 봐줘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떤 일은 공감대만으로 인기로, 동의하에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그것이 꼭 현재의 현금보조일 필요는 없지만, 해야 하기에 말이다. 정말 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해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지도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Network. (n.d.). TANF: State differences. Retrieved from http://www.networklobby.org/tanf-state-differences.
Rawls, J. (1999). A theory of justice (2nd Ed.).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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