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장애인복지, 특별한 것이 없는 특별함
많은 이들이 ‘복지국가 핀란드에서 장애인 복지라면 무언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핀란드에서 생활했던 나조차도 핀란드 정부가 아동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가 마련되어 있듯이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제도에도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핀란드의 장애인 복지는 나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정부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약간의 경제적 지원 일 뿐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핀란드에서 장애인들은 신체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들일 뿐, 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소외된 계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핀란드에서의 생활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특별하지만 그곳에서는 특별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Scene # 1. 모두를 위한 공간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가끔 이동보조기구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계단 앞에서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역무원의 도움을 기다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이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하염없이 역무원을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들을 보며 ‘환승 한번 하는데도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서울시내 버스들도 모든 이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된 ‘저상 버스’로 바뀌고 있지만, 사람들의 눈총으로 인해 휠체어를 타고 탑승하거나 유모차를 동반하고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 신체가 불편한 이들은 휠체어를 이용하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이동보조기구에 도움을 받으며, 어린 아이들은 유모차에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현재 이들에게는 ‘이동의 제약’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어르신들은 지팡이에 의존하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하염없이 역무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상위로 다니는 트램)
서울에서 지하철이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수단이라면, 핀란드 헬싱키의 경우 다양한 노선을 갖고 있는 트램이 시민들의 주요 교통 수단이다. 트램은 이동보조기구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과 유모차를 동반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최적으로 구비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트램과 트램 정류장에는 턱(높이차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휠체어에 타고 있어도 누구나 쉽게 트램을 타고 내릴 수 있다. 그리고 트램의 가운데 칸, 넓은 공간은 유모차를 동반한 이들이나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대에도 불편 없이 탑승할 수 있다.
버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찍이 저상버스를 도입한 국가인 만큼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운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저상버스들은 신체가 불편한 이들이나, 이동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노인들, 유모차를 동반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승·하차를 할 수 있도록 바닥이 기울어져 있다. 버스 기사 분들이 휠체어를 탄 이들을 돕기 위해 잠시 정차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버스에 있는 어느 누구 하나 눈총을 보내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한국에서는 버스가 어떤 이유로든 잠시 정차되면 사람들은 기웃기웃 고개를 움직이고 상황을 살피고, 어떤 이들은 시계를 보기도 하며 소리 내어 한숨을 쉬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나 역시기웃 거리며 상황을 살피려 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핀란드에서는 정차가 되어도 모두가 조용히 상황을 기다리기에 나 역시 편안하게 앉아 상황이 해결되기를 기다리고는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의 차이가 어쩌면 한국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관련된 제도가 도입되어도 실생활에 잘 적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핀란드에서는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백화점, 상점, 까페, 박물관 등 모든 시설들이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어있다. 그들은 ‘장애인에게 불편함을 못 느끼도록 공간을 구성한다면 이는 결국 영·유아부터 노인들까지 모든 이들에게 최상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장애인들의 이동을 기준으로 공간설계를 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북유럽의 공간 설계를 이야기하며 ‘장애인들을 위한 미술관’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모두를 위한 미술관’인 셈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채 자유롭게 낚시를 즐기는 핀란드인들)
Scene#2. 장애인들의 사회활동
핀란드에서 살다 보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제일 처음 장애인 근무자를 본 곳은 바로 슈퍼마켓이었다. 핀란드에서 처음 슈퍼를 갔을 때 신기했던 것이 바로 모든 계산대의 점원들이 앉아서 계산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오, 여기선 앉아서 계산을 하네?’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 왜 한국에서는 굳이 서서 계산을 해주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앉아서 계산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보니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 역시 일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 시설 곳곳에서 장애인들이 업무를 하는 광경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계산을 하는 슈퍼마켓 직원들)
핀란드에서는 취업이나 교육에 있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없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더 받는 특혜도 없을뿐더러, 비장애인과의 경쟁에서 받는 차별조차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장애가 취업에 있어서 큰 결점이 아니라, 한국에서 쓰는 용어로 표현에 의하면 스펙(specification) 하나가 부족한 것뿐이다. 따라서 장애인들 스스로 비장애인들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부를 더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결과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학력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근본적으로 핀란드에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없기에 장애인들 역시 그들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구직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모든 핀란드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직업재활훈련이나 구직 관련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다.
Scene #3. 경제적 지원
그렇다면 핀란드 정부가 장애인들을 위해 하고 있는 경제적 지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핀란드 정부의 장애인 대상 경제적 지원의 목표는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는데 있다.
* 아동 장애 수당(Child Disability Allowance)
16세 미만의 아동은 장기간 병을 앓고 있거나, 장애를 겪고 있는 경우 아동장애수당을 받게 된다. 상해를 입은 경우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보호나 재활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 수당이 지급된다. 아동의 상태에 따라 Basic/Middle/Highest로 나뉘어 지급액을 달리하며, 그 금액은 한달 기준 €92.31부터 €417.68까지 적용된다. 그리고 지급액은 아동의 질병 상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가족들에게 부여하는 부담감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을 고려하여 측정된다.
* 16세 이상 장애 수당(Disability Allowance for those 16 and over)
16세 이상의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지급되는 이 수당은 그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일이나 공부를 할 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데 의의를 둔다. 따라서 자신의 장애 및 상해로 인해 스스로를 돌봐야 하거나, 집안일을 하는데 도움이 필요로 하거나, 직장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있을 경우 지급된다. 지급액은 아동 장애수당과 마찬가지고 상태에 따라 Basic/Middle/Highest로 구분하여 한달 기준 €92.31부터 €417.68까지 달리 한다. 장애나 상해로 인해 추가적 교통비 발생, 의복 구매, 특별 식단 복용 등 기타 비용이 발생한 경우 특별 수당(Special expenses)을 요청할 수도 있다.
* 연금수혜자들을 위한 보조수당(Care Allowance for Pensioners)
수입 기초연금, 국민연금, 조기 국민연금 등 국가의 다양한 연금을 받고 있는 연금수혜자이자 장애인인 경우 이 보조수당을 신청 할 수 있다. 지급액은 수혜자의 상태에 따라 Basic/Middle/Highest로 나뉘며, 그 금액은 €61.93부터 €325.46까지 이다. 이들 역시 기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 특별 수당(Special expenses)을 요청할 수 있다.
제도란 필요로 하는 대상이 있기에 만들어진다. 핀란드의 장애인 복지 제도가 오히려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핀란드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없을뿐더러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복지 제도가 많이 마련되어 있는 사회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핀란드를 보며, 꼭 복지제도가 많은 것이 좋은 상황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특별하지만 특별한 것이 없는 핀란드의 장애인 복지, 신선하면서도 안타까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 복지로 기자단은 복지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복지로에서 운영하는 객원기자단입니다.
따라서 본 기사는 복지로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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