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멘토리 야구단- 미래에 희망을 던져라! (1편)
양준혁(스포츠해설가, 전 야구선수)
2010년 9월 19일. 18년의 야구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아마 국내 스포츠 선수 사상 가장 화려한 은퇴식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은퇴한 뒤,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야구를 통해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은퇴 경기 입장 수익 전액으로 ‘청소년 야구 드림 페스티벌’을 열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팀과 청소년들이 참가했다. 60개 팀, 1,000여 명의 학생들이 대전 야구장에 모였다. 아이들은 마음껏 야구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신나 하던지.
그날의 대회가 내 인생을 바꿨다. 아이들이 야구를 하며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마음 한 켠이 뜨거워졌다. 야구가 내 인생을 바꿨듯, 어쩌면 이 아이들의 인생도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미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와서 편하게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 길을 포기하고, 대신 국내에서 야구재단을 설립하고, 뒤이어 ‘양준혁 멘토리 야구단’을 창단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야구 선수는 아니지만, 어린이 야구단 구단주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살게 된 셈이다.
멘토리 야구단은 다문화 가정, 저소득층 가정, 탈북민 가정 등 소외받기 쉬운 가정의 자녀들로 구성된 야구단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이나 학교에서의 왕따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아이들이 일단 운동장에 와서 함께 뛰고 연습하다 보면 잔뜩 찌푸렸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 싶게 활짝 펴진다.
몇 년 전, 케냐의 빈민가 아이들로 구성된 ‘지라니 합창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잠깐 본 적이 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이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하고, 공부를 하고 싶지만 학교 문턱에도 갈 수 없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 되면 암흑 속에서 지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부르는 흥겨운 노래를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 같았다. 우리 야구단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지라니 합창단의 아이들이 노래를 하며 희망을 키우듯이, 멘토리 야구단 아이들은 야구를 하며 희망을 키운다.
내 친구 중에 미국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아들이 전국 상위 5% 안에 들 정도의 수재였다. 자신만만하게 미국 최고 대학에 지원했는데, 입학 허가가 안 났다고 한다. 결과를 납득할 수가 없어서 대학 총장에게 메일을 보내 이유가 뭐냐고 따졌더니 이렇게 답변이 왔더란다. 친구의 아들은 고등학교 재학 중에 스포츠를 한 기록도 없고, 봉사활동을 한 기록도 없었다고. 자기네 대학은 그렇게 학업에만 매진하는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고.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공부만 강요한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해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야구나 농구, 축구 같은 단체 운동을 통해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여러 가지 덕목들을 배울 수가 있다. 몸으로 그것들을 익히는 것은 글과 말로 수백 번 강조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특히, 야구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공식적으로 쓰지 않는 ‘희생’이란 단어를 쓰는 유일한 스포츠다. ‘희생번트’와 ‘희생 플라이’가 바로 그것이다. 희생정신뿐만 아니다. 야구는 단결력, 준법정신, 리더십 등 아이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전인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멘토리 야구단 아이들 중에 성근(가명)이라는 아이가 있다. 처음에는 코치 말도 잘 안듣고, 훈련 시간에 뛰라고 하면 느릿느릿 걷고, 뭐라고 하면 다른 데 쳐다보면서 딴청만 부리는 반항기 다분한 아이였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니 성근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잘 한다’는 칭찬을 듣고 경기 때마다 같이 뛰는 친구들과 ‘파이팅’을 외치다보니 눈에 띄게 자신감이 생겼고, 지금은 팀에서 없어서 안 될 주축 선수가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분노조절장애를 앓던 진산(가명)이라는 아이도 야구를 하면서 굉장히 밝아졌고 분노조절장애가 거의 치유되었다. 이렇게 야구를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희망을 지켜줘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
미래에 희망을 던져라! 2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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